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문단 편집) === 1388년, [[제2차 요동정벌]]과 왜구의 준동 === [[파일:ux8WIDQ.jpg]] 이 무렵 명나라와 고려의 외교적 관계가 험악해지면서, [[우왕]]과 [[최영]]은 [[제2차 요동정벌]] 계획이라는 엄청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불가론(四不可論)을 내세운 [[이성계]]는 이에 반대했는데, 그 반대 이유 중 하나가 '''"온 나라의 병사들이 원정에 나서면 왜구가 뒤를 칠 것."''' 부분이었지만, 이는 요동 원정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우왕에게 묵살당했다. 다만 우왕 역시 이러한 사태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위화도 회군]]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듯, 당시 우왕은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놓았다. 다만, 왜구에 대한 걱정보다 원정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며, 왜구에 대한 나름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원정을 틈타 다시 준동한 왜구들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왜구는 양광도를 휩쓸었으며, 양광도 안렴사(按廉使) 전리(田理)는 '''"적을 막으려고 하지만 병력이 취약해 방법이 없다."'''는 보고를 올렸다. 이 왜구들은 여름에서 가을 무렵에 이르기까지 기세를 떨쳤는데, 위화도 회군 이후 이러한 문제는 해결 되었다. 요동 원정군에서 돌아온 정지는 군사를 이끌고 이런 왜구를 쫓아내는데 성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